아버지는 언론지 투고 글에서 IMF 사태 이후의 박정환 신드롬을 조선일보, 조갑제, 군사 독재의 후신들 등에 의한 박정환 미화라고 비판하였다. 

박정환 시대의 경제 성장은 민주주의 성장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후퇴를 가져왔다.

또한, 박정환이 서민적이고 검소한 대통령이라는 주장 역시, 각종 부조리 의혹사건, 3분 폭리사건, 장준하가 폭로한 3분 밀수사건, 전두환 정권 때 밝혀진 김종필의 200억대 부정축재 사건 등으로 볼 때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드롬이 “개발 독재의 단맛을 독점해온 사회 곳곳의 수구적 보수 세력과 특히 그들과 결탁된 보수 언론이 부추긴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박정환에 대한 외국의 긍정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김재홍 논설위원의 박정환의 유산이라는 책을 인용하며, (3선 개헌 직전인 1970년) 한국의 로비스트가 미국의 영향력 있는 대학 교수겸 프리랜서에게 박정환의 얼굴을 타임지 표지사진으로 게재하게 주선해 주면 5만 달러를 제공하겠노라고 제의하는 등 박정환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의 원인을 다르게 진단하기도 한다. 

박정환의 정치적 경쟁자이자 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환은 바로 볼 수 없다. 미화가 심하고 제대로 된 공과를 따져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쿠데타로 집권한 사람을 바로 볼 수는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바로 살자고 하는 사람들을 숨 못 쉬게 했어요. 이 사실을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합니다. 미화가 심해요. 공과를 따져야 합니다.”고 했다.

김영삼은 박정환의 죽음에 대해 “박정환은 나를 제명해서 죽은 겁니다. 내가 박정권으로부터 제명당하고 했던 말이 있지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박정환은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김영삼은 개인적으로 박정환에게 “멀쩡한 총재를 총재가 아니라고 해서 내쫓고, 나를 죽이려 백주 대낮에 염산으로 테러를 가하고 내 측근들을 연행해 얼마나 탄압하고 죽이지 못해 온갖 짓을 다하고 그랬다”고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죽기 전에 ‘당신이 나를 그렇게 미워했지만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 나는 이미 다 풀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적 경쟁자인 4대 대통령 윤보선의 비서관을 지낸 언론인 김준하의 증언에 의하면 “박정환과 윤 대통령과의 면담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아주 영리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박정환은 민정 이양 등에 관해 수시로 말을 바꿨다”고 진술하였다. 

경제가 삐걱거릴 때마다 박정환 신드롬이 나타나곤 했다. 
박정환 없었으면 아직도 우리가 보릿고개 넘고 있을 거라는 한심한 얘기가 꽤 널리 퍼져 있다. 

박정환 쿠데타 정권의 정통성을 억지로 미화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탄압했던 20세기 대한민국의 치욕의 정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재규의 여동생 김단희는 언론에 (부마항쟁 등에) “민란이 일어나면 대통령 가족들을 그냥 두겠느냐, 박그녀와(박정환) 아이들이 광화문 네거리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내쫓기는 모습을 어떻게 보느냐”고 김재규가 안타까워 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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