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속의 비사(秘史)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14세기경 로마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인간 중심의 문예부흥 시대를 ‘르네상스’라고 한다. 

이 시대의 유명한 화가들은 성서(聖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주재로 하여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중에서도 안토니오 다 코레조의 벌거벗은 마가를 쫓는 군인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적잖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라파엘로가 그린 솔로몬의 재판은 지혜(智惠)와 슬기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우리들 주위에 있는 관공서, 학교,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표작인 ‘최후의 만찬’에 얽혀 있는, 뒷이야기는 국경을 초월하여 흥미로움을 더 해주고 있다. 이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무려 5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당시의 사람들을 모델로 해서 그려졌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제일 먼저 예수의 모델을 선택하였다. 위대한 걸작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청년들을 만나 무죄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겸비하고 있고, 죄로 인해 찌들어진 모습이 전혀 없는, 선한 얼굴을 찾으려고 애썼다.

드디어 19살 된 젊은 청년이 예수의 모델로 선정되었다. 
수개월 동안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 주인공인 예수를 그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후 5년여 동안 다 빈치는 계속해서 그 작품의 완성을 위해 노력했고, 열두 제자 중, 베드로를 비롯하여 세례요한에 이르기까지, 열한 명의 제자를 선정하여 마무리하였다. 

마지막으로 예수를 팔아먹은 가롯 유다의 모습이 그려질 공간만을 남겨 두었다. 
오랜기간 다 빈치는 사납고 굳어진 얼굴, 범죄적이고, 외식하며, 탐욕의 상처로 얼굴이 얼룩진 배반자 가롯 유다의 모습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뒤지고 다녔다. 

그런 모습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수많은 사람을 찾아가 보았지만 결국 실망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실망에 빠져 있던 다 빈치에게 로마의 감옥소에 사형 집행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한명의 살인수(殺人囚)가 있는데, 그 사람이야말로 다 빈치가 찾고 있는 사람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즉시, 로마 형무소를 찾아갔고, 그 사형수는 감옥(監獄)에서 잠시, 다 빈치를 만나게 되었다.
다 빈치는 검게 탄 얼굴, 길고 덥수룩한 수염에 빗지 않은 머리칼이 그의 얼굴을 덮어버린지라, 사람이 아닌 악마처럼, 악의가 넘쳐나는 배반자의 모습이 꼭 가롯 유다를 연상케 하였다는 것이다. 

로마 황제로부터 특별 허락을 받은 이 죄수는 화실(畵室)로 옮겨졌다. 
이 죄수는 매일 정해진 시간, 다 빈치 앞에 앉아서 천재적인 화가가 예수를 배신하고 팔아먹은 자(者)의 얼굴을 열심히 화면에 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개월 이 지나며, 다 빈치는 그림을 마무리하였고, 사형수를 지키던 간수(看守)에게 이 죄수를 다시 돌려보내도 좋다고 했다. 
간수(看守)들이 죄수를 끌고 나가려고 하는 순간, 그는 갑자기 간수들의 손을 뿌리치고, 다 빈치에게 달려와 크게 울부짖으며 말했다.

“다 빈치여 나의 얼굴을 자세히 보십시오. 내가 누구인지 모르시겠습니까?” 

다 빈치는 고도로 훈련된 예리한 눈으로 몇 개월 동안 계속해서 쳐다보아 왔던 그 사람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아니요, 나는 당신이 로마의 감옥에서 내 앞에 오기 전까지, 내 평생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것 같소.” 

그러자, 그 죄수는 그의 눈을 하늘로 향한 후, 큰 한숨과 함께 “오! 하나님 내가 어쩌다가 이런 모습으로 전락되었나이까?”라고 절규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곧 그의 얼굴을 다 빈치에게 돌리면서 울부짖기를 “레오나르도 다 빈치여! 나의 얼굴을 자세히 보시오. 당신이 5년 전에 예수의 모습을 그릴 때, 그 예수의 모델이 바로 나였단 말이요. 이래도 날 모르겠단 말이오?”라고 하면서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델은 자기를 몰라주어서가 아니라, 더럽고 추악한 모습으로 변한 자기 자신이 화폭에 담겨있는 것을 보고는 더욱 슬퍼하며,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그림에 얽힌 이야기는 전설이 아닌 실화(實話)로,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과 그릇된 생각, 그리고 인생에 대한 빗나간 견해가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교훈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그래서 사람은 겪어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최소한 5년 정도는 겪어봐야 그 사람을 조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평생을 겪어봐도 그 사람에 대한 것을 다 알기란 쉽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즉, 요즘 얼굴에 가면(假面)을 쓰고 다니는 자(者)들이 지천(地天)에 널려있기 때문에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즉, 취임 당시에는 평등, 공정, 정의로운 것 같으나, 5년이 지난 뒤에는, 스승을 팔아먹은 가룟 유다의 모습으로, 무너진 경우를 흔히 보아왔던 우리들이다. 

그래서 일까! 혹자는 이르기를, 문 정권은 취임사에서 약속한 나라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달 말 국회통과가 예고된 언론중재법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부끄러운 역사를 만드는 일이라고 하면서, 심하게 말하면 ‘문제인 보호법’이라고 일갈(一喝)하기도 하였다. 

그렇다! 정(政)은 백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고, 신(信)은 백성들을 믿고 따르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도, 요즘의 이 땅에는 창(槍)과 공작(工作)만 있을 뿐, 그 어디에서도 신의(信義)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5년 후의 그림(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어떻게 그려질지 사뭇 궁금하기만 하다. 그래도, 예수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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