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국민(기독교인)을 바이러스(Virus) 취급하지 말라!”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어느 유명한 의학박사는 유행병이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왔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라고 한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최강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발생한 페스트로 인하여 지도자 페리클레스를 비롯한 아테네 인구의 반 이상이 죽었다. 이 막심한 피해로 결국 아테네는 멸망하게 된다.

로마는 기원후(紀元後) 125년에 탄저병과 말라리아, 169년에 페스트의 유행으로 국력이 크게 쇠락하는 결과를 가져왔었다.

중세시대에도 페스트는 1347년과 1351년 사이에 전 유럽인구의 1/3인 약 2천만 명의 희생자를 내기도 하였고, 당시 봉건사회와 카톨릭의 절대권위에 큰 치명타(致命打)를 안겨 주었다. 학자들은 이 사태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배경이 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16세기 초에는 신대륙 발견과 함께 유럽에서 남아메리카로 전파된 천연두와 홍역은 95%에  이르는 원주민의 목숨을 앗아가며, 마야문명(Maya)도 서서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남아메리카도 매독이라는 질병을 유럽에 선사하게 되는데, 콜럼버스의 선원 중 일부가 옮겨졌다는 매독은 몇 달 만에 전 유럽에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희생자 중에는 영국 왕 헨리8세도 있었다고 한다.

20세기에 와서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 사이에서 유행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에서 최소 2천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1980년대 초에 등장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은 중앙아프리카 지역, 특히 사하라사막 남쪽에서만 1천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속출하였다.

최근에도 중증호흡기증후군(SARS)과 조류독감 등 새로운 질병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왔었다.

특히 2020년 새해 벽두(劈頭)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기 시작하였다.

지리 한 장마와 태풍은 떠나간 것 같은데, 아직도 코로나19는 지구촌마다, 무서운 괴물처럼 살아 있는 듯하다.

코로나19의 사망률은 그다지 높은 것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방역과 예방을 위한 조치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고, 가난하게 하였으며, 정상이 아닌 비정상적인 삶을 살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루에 사람이 아무리 단순하게 산다고 해도, 이동하는 경로는 서너 곳이 넘으면 넘었지, 그보다 적지는 않다는 것이다. 지하철. 직장. 거래처. 마트. 주유소를 비롯한 기타 모임이나 만남이 그럴 것이다.

코로나19가 어디서 감염되었는지 아무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환자마다 어디서 감염됐느냐고 물으면, 특정 장소와 그리고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동선(動線)만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기존환자와 접촉한 사람은 자가격리시키고, 장소를 폐쇄함은 물론, 방역을 철저히 해 더 이상의 확진을 막는데 주력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가 방송에 계속 보도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구지역에서 한때 유행했던 신천지는 이단(異端)이기 때문에 교회와는 상관이 없다고 억울해 하는데도, 동일한 교회로 착각하도록 여론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인에 대한 주위 시선은 날카롭기만 했다. 
심지어 식당이나 혹은 찻집에서 먹고 마시기 전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기독교인 인줄 알고, 멀찌감치 자리를 뜬다. 즉 멀쩡하고 건강한 사람을 환자로 착각하고 차등과 차별대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장의 명함(名銜)을 가진 목회자가 주도했던 8.15 광화문 모임 끝에 갑자기 환자들이 폭발하였다며, 정부는 2.5단계의 방역행정 명령을 시행토록 했다.

이로 인하여 6만여 교회는 비대면(영상)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같은 종교인 천주교와 불교는 빼고 개신교회에만 적용하였다.

이는 국민의 헌법으로 보장된 양심의 자유가 종교의 자유를 포기하게 한 행정명령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은, 나치가 유대인들의 등과 가슴에 붙였던 그 표징(表徵)을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 붙여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성결교단의 어느 유명한 목회자(牧會者)는 “누구를 막론하고 감염 예방을 위한 당국의 지침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이 나라 국민으로써 당연한 도리(道理)이다. 그러나 예배는 교회의 생명이기에 자유(自由)를 빼앗길 수 없다.”는 순교자(殉敎者)다운 모습에서 그의 깊은 내공을 엿볼 수 있다.

물론, 그 순교자의 정신은 기독교 경전인 ‘성서(聖書)’와 ‘인간이해(人間理解)’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기독교는 역사를 바꾼 전염병의 공포에 늘 대응해 올 수 있었고, 자유, 인권, 정의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분들의 헌신(獻身)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인류의 역사는 기독교가 있었기에 더욱 발전하고 성숙해져 왔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19를 빌미로 기독교인들이 ‘바이러스(Virus)’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를 빌미로 종교계뿐만 아니라 이 나라에서 자유(自由)란 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괜한 걱정을 다해본다.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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