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아버지는 박정환 독재에 맞서며 ‘국가의 역할과 개혁의 덫’이란 주제로 저항과 이성의 삶과 자세를 천명했다. 

진보지식인으로서 수난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의 생생한 증언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거쳐 독재권력에 맞선 민주화운동, 분단 극복을 향한 통일운동을 누구보다 온몸과 마음으로 펼친 운동가였기 때문이다.

“역사의 길이란 형극의 길이자 수난의 길이다. 온갖 세속적 가치로부터 소외되는 길이다. 사람들은 역사의 길을 택하지 않고,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알면서도 현실의 길을 걷는다. 현실의 길을 택한 사람들은 갖가지 명분을 내세운다. 그 길이 민족을 위하는 길이고 독립을 위하는 길이며 통일을 위하는 길이다”고 강변했다.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서약서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더이상 진전시킬 수 없었다. 비장한 분위기였다. 이들의 힘들고 험한 투쟁이 당장은 실패로 끝날지 몰라도 혼연일체가 되어 자유언론을 외치고 있었다.

“내 말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바른 말을 해야 했다. 그것은 독재에 도전하는 정당한 행위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유신독재의 부당성을 주창한 아버지는 수난을 당한다. 

아버지의 삶은 우리 시대 진보적 지식인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곧은 말은 독재자들이 횡행하는 어둠의 시대를 밝히는 이성의 빛이 되었다. 아버지는 수난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 말은 새로운 시대를 진전시키는 이론과 정신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 일생의 채찍, 거울, 힘이 되었다. 

나에게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계속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죽음을 무릅쓰고 사실을 써내야 하는 것이, 작가가 세상에 가지는 책무”라고 했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먼 훗날에도 욕먹지 않는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사람의 말대로 크게는 이 민족을 위해서, 작게는 내 자신을 위해서, 어찌 더러운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다른 ‘니체사상 연구’가 출간되는 1970년대 후반, 박정환의 유신독재는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다. 

대학생들의 반정부운동이 거세었고 재야인사들이 유신철폐를 주장하면서 거리로 나섰다. 

교수들이 강단에서 물러나게 되고, 학생들이 학원에서 추방되었다. 언론인들이 자유언론을 실천하다 강제 축출당했다. 박정환 정부는 사회안전법을 만들어 비판세력을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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