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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기사승인 2019.03.06  16: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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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안(碧眼)의 천사(天使)!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MBC 방송사에서(1999년 11월~2000년 6월)방영된 드라마 허준은 한국 사극 드라마 역사상 가장 높은 63.7%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물론 이것은 사극이면서 의학 드라마이기도 하다.

어느 날 서찰(書札) 때문에 유의태 스승으로부터 쫓겨난 허준은 안점사라는 절에서 대풍창(大風瘡)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김민세를 찾아간다.

이곳에서 안광익 으로부터 삼적대사(김민세)가 이곳에 안점사라는 절을 세우고 ‘상화’를 양자로 삼은 사연을 듣게 된다. 민세는 자기와 한날 한시에 내의원에 입격하였다고 한다.

그는 다른 동기들보다 재능이 뛰어났음은 물론, 더구나 생명이 위독한 세자를 치료하여 차기 어의 감이라고 할 정도로 지극한 총애를 받고 있었단다.

그리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 자기의 누이와 결혼하여 아들을 뒀는데 그 아들이 무척 총명하고 귀여워 늘 웃음꽃이 만발하고 있었다.

이렇게 화목한 가정을 이룬 김민세는 더 이상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이 없어졌다는 급한 전갈을 받는다. 이내 집으로 달려간 민세는 하인들로부터 아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었는데 대풍창 병자들이 그 시간에 마을을 지나갔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때 모두가 불길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시절에는 대풍병 환자들이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민세를 비롯한 식솔들은 밤새도록 산속을 찾아 다녔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날이 밝으며, 탈진할 데로 탈진한 민세 앞에 작은 오두막집이 보인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 곳을 향하여 가는데 가마솥에는 장작불이 피워져 있고, 연기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앞에는 얼마 전에 자기 아들한테 선물한 비단 신발이 흙이 묻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신발을 가슴에 안으며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

그는 이성을 잃은 듯 거죽 문을 불현 듯 치켜 올리며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는 대풍창 환자인 세 식구가 고기를 먹고 있었고, 특히 소쿠리 위에 있는 뼈와 고기를 자기 아들 것으로 착각한다.

순간적으로 옆에 있던 쇠스랑을 집어 들고는 그들을 미친 듯이 내리친다. 순간 민세의 얼굴과 옷자락에 선혈이 낭자한다. 그렇게 세 사람을 죽이고도 그의 분노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던지, 또다시 쇠스랑으로 땅을 내리 찍고는, 아들의 비단신을 가슴에 안으며 오열한다.

이때 오두막으로 돌아오던 환자의 어린 아들이 이 광경을 보고는 살려달라며 피하는데, 그 아이를 상화로 알고 부둥켜 안는다.

이때 하인들이 도련님은 친구들과 냇가에서 놀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고 하는 소리를 들려준다. 이렇게 순식간에 일이 벌어지고서야 비단 신발의 사연이 밝혀진다.

그 비단 신발이 탐이 난 대풍창 환자들은 죽은 상화에게서 신발을 벗겨 이 움막까지 들고 왔다는 것이다. 이 충격에 민세의 부인은 자결하였고, 이 아이를 양자로 삼아 상화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 한다.

그리고 어의(御醫) 양해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궁을 떠나 서산대사로부터 삼적이라는 법명(法名)을 받고 이곳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대풍창이라는 고질병을 완치하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돌이킬 수 없는 오해로 죽인 자들에게 평생을 참회하며 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진 물러 터진 환부의 피고름을 빨아가면서 까지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서를 써놓고 독초(毒草)로 만든 약(藥)을 환자가 아닌 자기가 직접 마루타 되어 실험을 강행하다가 피를 토하며 사경을 헤매기도 한다.

그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오로지 그들을 위해 헌신한 삶은, 조역으로 등장하였지만 주연을 뛰어 넘는 화려함이었다. 이런 주연들이 있었음에도, 환자들은 여전히 ‘문둥이’, ‘용천배기’ 라는 멸시천대를 받으며, 근대시대까지 이른다.

즉, 일제강점기인 1916년부터 대풍창을 ‘한센병’ 이라는 이름으로 환자들을 소록도에 강제 수용하였는데 많을 땐 약 6천여 명이 있었지만 지금은 약 500여명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곳을 예전에는 배를 타고 다녔지만 2008년에 소록대교가 준공되면서 지금은 걸어서 갈 수도 있다.

전남 고흥군에 딸린 이 작은 섬은 사슴의 눈망울을 닮았다하여 소록도(小鹿島)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물론 이곳에는 국립소록도 병원이 있는 섬으로 잘 알려지긴 하였으나, 그 뒤에 숨겨진 수많은 편견과 슬픔으로 얼룩진 역사에 대하여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이 주로 다녀가는 곳은 탄식의 장소인 수탄장을 비롯하여 감금실, 검시실, 단종대, 화장장, 순록탑, 애한의 추모비, 하나이 원장 창덕비, 자혜의원, 갱생원식량창고, 양지회기념관, 우촌복지관, 교황 요한바오로2세 방문 기념비.

또한 1936년 12월부터 3년 4개월 동안 연인원 6만 여명의 환자들이 강제로 동원돼 6천 평 규모로 조성한 중앙공원, 개원제 40주년 기념비 등이 있는데 어디를 막론하고 환자들의 애환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록도에는 천사처럼 살다간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님의 공적 비를 볼 수 있다.

이들 ‘벽안의 천사’들이 소록도에 들어온 것은 1962년 6월 이었다고 한다.

‘그리스도 왕의 수녀 회’ 소속으로 간호사 자격을 가진 20대의 두 수녀는 이곳에서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하루 하루를 나던 한센병 환우를 돕기 위해 소록도를 찾았다.

이들은 당시 국내의 열악한 치료 여건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 보내온 의약품과 지원금 등으로 온갖 사랑을 베풀었다고 한다.

환우들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등 헌신적인 치료활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의 선행이 알려지고 정부는 1996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이곳에서 43년간 봉사하다가 “나이 들어 다른 이에게 부담이 되기 싫다.”며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불편한 몸을 이끌고, 홀연히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마리안느 와 마가렛 수녀는 누가 뭐라 해도 주연을 뛰어 넘는 천사의 역할이었다.

이들에게 ‘노벨 평화상’을 드린다 한들, 어느 누가 아깝다 하겠는가! 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 할 것이다!

아! 벽안(碧眼)의 천사님 들이여! 남은 여생 평안(平安)하시길 기원합니다.

세종매일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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