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家門)의 영예(榮譽)’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눈물이 이 편지를 적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머니 저는 자원해서 전투비행훈련을 받았습니다. B-26 폭격기를 조종할 것입니다.  ~중략~ 

나의 승무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 중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내를 둔 사람도 있고, 애인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저의 의무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들 짐 올림

이 편지는 릿지웨이 장군이 맥아더 장군이 해임됨에 따라 UN군 총사령관으로 영전한 뒤 그 후임으로 부임한 밴프리트 미 8군사령관의 아들 지미 밴프리트 2세 공군 중위가 자원하여 아버지가 사령관으로 있는 한국전에 참여 하면서 어머니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다.

1952년 4월 2일. 이 훌륭한 군인은 압록강 남쪽의 순천지역을 폭격하기 위해 출격했다가 새벽 3시 김포 비행단의 레이더와 접촉한 후 표적을 향해서 날아가더니 레이더에서 사라진 뒤 소식이 끊겼다.

즉시 수색작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밴프리트 미8군사령관은 지미 벤프리트 2세 중위에 대한 수색작업을 중단하라고 지시한다. 적지에서의 수색작전은 너무 무모하다고 아들의 구출작전을 중지시킨 것이다.

며칠 뒤 부활절을 맞아 그는 전선에서 실종된?미군 가족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저는 모든 부모님들이 모두 저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벗(友)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말한 벗이 곧 한국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밴프리트 미 8군 사령관은 한국을 벗이라고 생각했고, 그 벗을 위해 자기 자식을 희생시킨 것이었다. 이런 강직하기 짝이 없는 군인 앞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1952년 12월, 대통령 당선자인 노르만디의 영웅 아이젠하워가 한국 전선을 살피기 위해 방한하여 8군 사령부를 찾은 것이다. 8군과 한국군의 고위 장군들과 참모들이 모두 참석하고 전 세계의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밴프리트 사령관이 전선 현황에 대해서 브리핑을 끝내자 조용히 듣고 있던 차기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 당선자가 느닷없는 질문을 하였다.

“장군, 내 아들 존 아이젠하워 소령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얼마 안 있어 대통령에 취임할 당선자가 전투 사령관에 대한 첫 질문 치고는 너무나 대통령답지 않은 사적인 질문이어서 모두들 무슨 일이 벌어질까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 전방의 미 제3사단 정보처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라고 밴프리트 장군이 짤막하게 대답하자 아이젠하워는?그야말로 참석자 모두가 놀라 자빠질 사적인 부탁을 한다.

“사령관, 내 아들을 후방 부대로 배치시켜 주시오.”

참석자들이 모두 서로 두리번거리면서 웅성거리고 밴프리트 사령관도 언짢은 표정으로 아이젠하워를 응시하면서 의아해 하자 당선자가 조용히 말했다.

“내 아들이 전투 중에 전사한다면 슬프지만 나는 그것을 ‘가문(家門)의 영예(榮譽)’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존 아이젠하워 소령이 포로가 된다면 적군은 분명히 미국 대통령의 아들을 가지고 미국과 흥정을 하려 들 것입니다. 나는 결단코 그런 흥정에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령관이 잘 알다시피 미국 국민은 대통령의 아들이 적군의 포로가 되어 고초를 겪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대통령의 아들을 구하라’고 외치며 나와 미국에게 적군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태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령관이 즉시 내 아들이 포로가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주실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장면인가!
순식간에 의아해하던 분위기가 반전되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표정이 되고 곧이어 “즉각 조치하겠습니다. 각하!” 라는 밴프리트 장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고 한다.

국방부 기록에 의하면, 1950년 6월 25일 한국전 발발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전투 중 한국 내 미군 사망자수는 36,574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부상자는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특히, 한국전에 참가한 미군 장성의 아들들은 모두 142명, 그중 35명이 전사하였다. 이렇듯 남의 나라 전쟁에 수많은 전사자를 내고도 오히려 ‘가문의 영예’라고 자랑삼아 말하는 미 국민들의 저력이 빛나 보인다.

6.25 격전지(激戰地) 중에는 세종시의 전동면에 위치한 개미고개 전투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군 667명의 참전용사 중 무려 517명의 인명손실과 더불어 사단장(딘소장)까지 포로로 잡힌 이 전투는 1950년 7월 9일부터 3일 동안 미 24사단의 21연대가 북한군의 남침에 금강 이북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북한군 2개 사단규모를 감당치 못하고 결국 전멸하다시피 하면서 후퇴했지만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북한군의 남침을 며칠 동안 지연시킨 전적지(戰迹地)로 유명한 곳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북한의 남침 도발에 맞서 이역만리에서 자유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산화(散花)한 미군 참전용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한국전쟁 당시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꽃다운 젊음을 바친 미군과 호국영령들의 거룩한 희생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행히! 개미고개전투 68주년을 맞아 7월 11일 10시에 자유평화의 빛 위령비 앞에서 추모행사를 개최한다. 행사를 주관하는 관계 공무원 및 보훈단체회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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