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형제봉의 빗자루 신’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이웃나라 일본에는 빗자루를 모시는 신사가 있다.

빗자루를 정성으로 모시면 아이가 순조롭게 태어나고,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뿐만 아니라, 장차 큰 인물이 된단다. 그래서 아이를 회임한 집은 빗자루를 거꾸로 세워둔다. 그러면 빗자루에 내려와 순산을 도와 준단다.

원래, 소원을 이루고 싶으면, 신을 기쁘게 해야 하는데, 그러러면,

맛있는 음식과 술을 가득 차리고,
즐겁게 노래하며 예쁜 춤을 추며 
귀한 물건을 많이 바쳐야 한데요

신의 기분이 좋아지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데, 그때

“소원을 들어주시면 더 잘 모시겠습니다”

라는 말을 덧 붙여야 한단다. 그것은 소원을 안 들어주면 잘 모시지 않겠다는 말로, 일종의 협박이기 때문에, 다음에도 좋은 대접을 받고 싶은 신이, 소원을 들어준단다.

그런데 빗자루 신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형제봉으로도 불리는 원수봉 자락에도 살고 있었다.

옛날에 형제봉 자락에 연부자가 살고 있었다. 부지런하고 복이 많아 날이 갈수록 재산이 불어났는데, 자식복도 많아 7남매나 두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막둥이가 태어난 후부터 연부자가 크게 바뀌었다.

그렇게 인심이 좋았던 연부자였는데, 언젠부턴가 갑자기 자린고비가 되고 거만해졌다.
가난한 사람을 벌레 보듯이 무시하는가 하면, 꺼덕하면 화를 내며 호통쳤다.

그래서 하늘이 노했는지, 찬바람이 부는 겨울밤에 헛간의 빗자루가 안체의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이거 어쩌나, 아궁이의 불씨를 쓸어담어다 지붕에 뿌려, 집이 홀라당 타고 잠자던 식구들도 불타 죽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외할아버지 문병을 간 장남과 막둥이는 살아남았는데, 망나니로 소문난 장남은 간섭하는 어른이 없어지자, 제멋대로 전답을 팔아 사치하고 투전방에 다니느라, 삽시간에  가산을 탕진하고 말았다. 막둥이는 그런 형 때문에 알거지가 되었는데도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원망 한 마디 하는 일 없이, 산자락이나 강변의 버려진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그렇게 30년이 지나자, 해마다 풍작을 이루는 기름진 땅을 가진 부자가 되었다.

 반면에 가산을 탕진하고 마을을 떠난 형은

“복도 지질이 없다니까.”

신세 타령을 하며 이곳 저곳을 떠도는 비렁뱅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천안 삼거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어떻게 하면 밥 한 술이라도 얻어먹을까를 궁리를 하며, 버들가지가 느러진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자네도 연부자가 준 노잣돈을 받았나.”
“받았지, 과거를 보러가는 사람 모두에게 준다던데.”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서생들이 연기의 연부자집에서 하룻밤 묵고 노잣돈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듣고보니, 다름 아닌 동생 이야기였다. 그말을 들은 형은 주린 배를 부여안고 단숨에 달려가

“너 이놈, 네가 부자가 되었으면 형부터 찾아야지.”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며 큰소리를 쳤다. 그렇지 않아도 형을 걱정을 하고있던 막둥이는 형의 목소리를 듣자 버선발로 뛰어나가 안방으로 안내하고, 준비해 둔 비단옷으로 갈아 입히고, 잔치를 벌렸다. 그리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까지 지어드렸다. 그러자 형은

“형한테 잘하는 것은 동생의 당연한 도리지.”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고, 형을 잘 모시는 것이 동생의 도리라며, 이것을 해달라, 저것도 갖고 싶다는 말을 했고, 막둥이는 형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드렸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막둥이는 그날도 들에 나가 일을 하는데, 아이 하나가 뛰어오면서

“아저씨의 형님이 아프다며 빨리 오래요.”

형에게 큰일이 생겼다는 말을 하며 숨을 헐떡거린다. 막둥이가 놀라서 달려가 보았더니, 아프다던 형이 대청에 앉아서 부채질을 하며, 허겁지겁 달려온 동생을 곁눈으로 바라보며

“빈손으로 오다니,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냐.”

불 같이 화내면서 마룻바닥의 목침을 집어던졌다.

“서둘러 오느라 준비를 못했습니다. 금방 준비해 오겠습니다.”

막둥이가 이마의 피를 닦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헛간에 놓여있던 빗자루가 ‘휘익’

하고 공중으로 날더니, 부채질을 하는 형의 뒤통수를 후려 갈기며

“네가 그러고도 형이냐, 사람 같지 않은 놈아”

 큰 소리로 꾸짓으며 등 엉덩이 가슴을 가리지 않고 패댄다. 놀란 형이 도망치자 따라다니며 두드려 팬다. 견디다 못해 밖으로 도망쳤으나 빗자루도 뒤따라다니며 두드려 팬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동생을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견디지 못한 형이 무릎을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자, 빗자루가 어디론가 날아갔다.

순간 ‘피익’ 하고 무언가가 꺼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고래등 같았던 기와집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무성한 잡초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산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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