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살리라…‘전월산의 용천’

▲권오엽 명예교수.
▲권오엽 명예교수.

전월산 꼭대기에 용천이라는 샘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 산을 뚫고 금강으로 내려간 것으로 보이는 샘에는 희검은 구름이 비친다. 내려다보는 도중이라도 용이 치솟아오를 것 같아 오싹해진다. 누가 이름 지었다 해도 용천이라 했을 것이다. 신비롭기 그지없어 자랑할 만한 전설이 있었을 법한데, 안내판에 기록된 내용은 그렇지 않다.

금강을 끼고 우뚝 솟은 전월산 상봉에 용천이라는 샘이 산속으로 뚫려 있고, 금강까지 물이 흘러, 이무기가 금강에서 자라 용천까지 올라와 백년을 기도하면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승천하게 된다고 하였다.

고려 초엽 이무기가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천궁의 파수병이 되기 위해 물줄기를 타고 승천하던 중 하늘의 중간쯤에서 물줄기가 멈추더니 다시 땅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하늘에서 진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너 마을 반곡의 산모가 너를 쳐다보고 있지 않느냐. 승천할 때는 티 없이 맑아야 되고 절대 산모가 보아서는 아니 된다. 명심하라 하였거늘”

이무기는 산모 때문에 승천을 못하고 용천에 떨어진 후 버드나무가 되었다. 그 후 버드나무는 원망을 하듯 반곡마을을 향해 자랐고 이무기의 심술 때문에 반곡마을 아낙네들이 바람이 났다고 한다.


자랑은커녕 부끄러워지는 내용이다.
주민들이 전하는 전설이라면 긍지를 느끼며 자랑할 만한 내용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화합이 아닌 반목을 조장하는 내용까지 있다.

따라서 이것은 이 지역을 아끼는 세력이 아니라, 모독하고 조롱하는 방법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외부세력이 편집하여 전승시킨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용도 아닌 이무기가 승천에 실패했다는 내용이나 승천이 고작 천궁의 파수병을 목표로 한다는 것, 이무기의 저주로 반곡과 양화리 주민들이 반목하게 된다는 내용 등은 어떻게 보아도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심지어 아이를 잉태한 임산부를 부정의 근원으로 단정했다. 이런 내용의 전설을 듣거나 이야기하며 살아가는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우리는 영원히 이무기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반목하며 분열하며 사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라네.”

이런 패배주의에 빠져 남의 지배를 받는 하층민으로 사는 운명이라며 낙담에 빠질 수도 있다. 말하자면 주민들의 희망과 긍지를 꺾어버리는 전설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용천에는 어울리지 않는 전설이다.

이 용천은 누가보아도 하늘과 금강을 왕래하는 용의 통로로 보여, 이곳을 거처로 하는 용이 산자락의 주민들을 수호했다는 전설을 생각할 수 있는 샘이다.

이무기란 용이 되려는 뜻을 이루지 못한 미물이다. 그래서 용샘의 유래를 이무기에서 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둥글게 파인 굴이 용이 드나들던 출구로 보여, 이무기가 아닌 용에 얽힌 유래가 있었을 법하다.

원래 용이란 구름을 만들어 비를 내리게 하거나 구름을 불러 가뭄과 홍수를 조절하는 신비한 동물로 여기며,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그런 용은 사슴의 뿔을 하고, 머리는 낙타, 눈은 귀신, 목은 뱀, 배는 이무기, 비늘은 물고기, 발톱은 매, 발바닥은 호랑이, 귀는 소를 닮았다. 그 용이 땅을 파고 들어가 물을 만들어 놓으면, 그 물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비가 된다. 용의 그런 능력이 풍작과 번영을 조절하는 것이다.

용들은 역할에 따라 노랑 파랑 빨강 하양 검정의 색을 띄는데, 
 
“황룡이 땅속에 들어가 황천을 낳으면 그것이 하늘의 노란 구름이 되고, 청룡이 땅속에 들어가 청천을 낳으면 그것이 하늘의 파란 구름이 되고……,”

적룡,백룡,현룡이 땅속에 샘을 만들면 하늘의 빨강, 하양, 검정의 구름이 된다.

용이 그런 능력으로 주민들을 수호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제사를 지낸다.

용이 모시고 온 천신이 물가에서 만난 여신에게 잉태시킨 전설은 곳곳에 전한다. 그런 전설이 전월산의 신비한 용샘에는 왜 없었겠는가.

용이 안내한 천신과 금강의 여신이 사랑하여 아이를 잉태하는 전설은 있어 마땅하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서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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